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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부정공>백운재이건기(白雲齋移建記)
白雲齋移建記 狄梁公登太行山望見白雲而嘆曰吾親舍其下齋之命名取義盖本於此而親親之道奚獨狄公之望雲乎本郡治北雙岩坊有白也山即吾先代托體之岡而累世雲仍興衰之處懸扁曰白雲亦豈偶然哉先祖 贈吏曹參議府君諱斯文墳穴未知綠何失傳而只在此山者乃其配 贈貞夫人靑山鄭氏之藏繼而封之者參議之孫直長諱穩暨其配令人全州李氏永膺大君琰之女舊有薦芬之閣而突兀受風難於傳遠故議欲移建未就甲寅冬十月歲一祭時宗議齊發置若干穀於各派門中越三年丙辰春遂相宅于舊址之下涓吉經始增其新制吿訖于丁巳之夏而落之若論其倡謀鳩財之道則族叔旭鉉氏與夫泳薰寅錫淇善及家弟鍾鉉實多先後之力至於敦匠視事則有泳憲從居近而獨賢也噫凡今後孫之升降於此者無徒以修繕榱瓦堂宇爲吾事己了須以奉先思孝無忝所生爲第一義諦聿修厥德則齋之治不治如太虛點雲而顧善繼善述之道不在於此歟 十六代孫 鍾息 謹識 백운재이건기(白雲齋移建記) 적량공(狄梁公)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흰 구름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가로되 『내 어버이 집이 그 아래에 있다.』 하여 재의 이름을 취한 뜻이 대개 이에 근본하였으나 어버이를 어버이로 한 도리가 어찌 홀로 적공의 바라본 구름일까 보냐, 본군 북쪽 쌍암방(雙岩坊)에 백야산(白也山)이 있으니 곧 우리 선대의 몸을 의탁하신 산봉우리로 여러 대 자손의 흥하고 쇠한 곳이요, 현판을 백운(白雲)으로 간 것이 또 어찌 우연이겠는가. 선조 증 이조참의 부군(贈吏曹參議府君) 휘 사문(斯文) 묘소를 어떻게 해서 실전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다만 이 산에 있는 것은 그 배위인 증정부인 청산 정 씨(贈貞夫人靑山鄭氏)의 유택(幽宅)이요, 계장한 묘소는 참의공의 손자 직장(直長) 휘 온(穩) 및 그 대위 영인 전주 이 씨 영응대군(令人全州李氏永膺大君) 염(琰)의 따님이시었다. 오래 전부터 재숙할 재각이 있었으나 비바람을 맞아 오래 지탱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갑인년 十一월 묘제 때에 종중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 약간 곡식을 각 파 문중에 분치하고 三년뒤 병진년 봄에 마침내 옛터 밑에다 터를 잡고 날을 가려 착공한 뒤 그 새로운 체제를 더하니 정사년 여름 낙성을 하게 되었다. 대개 그 협의하여 경비를 모은 내력을 말하면 족숙 욱현(旭鉉) 씨 및 영훈(永薰), 인석(寅錫), 기선(淇善), 종현(鍾玹)이 선후하여 진력하였고 그 감독은 영헌(泳憲)이 가까이 사는 까닭으로 홀로 많은 수고를 하였다. 아, 오늘날 후손으로서 여기에 오르내린 자는 한갓 당우개수(堂字個修)로써 내 일을 마쳤다 하지 말고 모름지기 선영을 받들고 효도를 생각함으로써 소생(所生)을 욕되게 아니함을 제일 준칙으로 하여 마침내 그 덕을 닦는다면 재각의 다스려지고 아니 다스려짐은 저 맑은 하늘에 한 점 구름과 같으니 돌아보건대 잘 계승하고 착하게 기술한 도리가 이에 잊지 아니하겠는가. 十六代孫 鍾悳 삼가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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